스포츠 영화는 원래도 주류였긴 하지만, 올해 한국 영화에는 유독 더 스포츠 영화가 많았다.
농구의 리바운드, 복싱의 카운트, 축구의 드림 등등.
카운트를 제외하고는 다 봤지만, 사실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프린트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스포츠 영화는 본질적으로 그 온도가 뜨겁기 마련이다. 열정이라는 소재를 다루기 가장 좋은 장르이고, 또한 명확한 목표가 설정되다 보니 그 노력 하는 과정이 관객들을 몰입하게 하고, 또한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성취욕구를 자극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감정적인 영화였고.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열정적인 스포츠 서사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스프린터는 일반적인 스포츠물과는 달리 굉장히 절제된, 담백한 연출을 이어간다.
사실 초단위 승부인 단거리 달리기, 그것도 국가 대표 선발전이라는 소재는 감정적이기 쉬운데 놀랍도록 침착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심스러운 접근은 굉장히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같은 선발전에서, 같은 출발점에 선 세 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마음으로 달린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 앞에서 이러저러한 선택도 하고, 또한 각기 다른 결말을 맞는다.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히 복합적인 상황으로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이러한 구도를 통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만약 이 영화가 다른 스포츠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노선을 택했다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에게 남는 건 정호는 나쁜 짓 하다가 결국 잘못 됐고, 뭐 열심히 하니까 잘됐네. 준서랑 코치 모습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뭐 그러고 끝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영화는 감정을 절제하면서 정호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코치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들은 결국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정호는 무조건 나쁜 사람인지, 이게 정말 모두에게 잘 된 결말인지, 우리는 끝까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리고 그 결과의 아주 아주 작은 일을 확인했을 뿐이다.
영화도 결국 서술자가 있는 작품이다. 카메라와 편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부분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또 하나 이 영화으 훌륭한 점은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법에 있었다.
사실 드림과 리바운드를 보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캐릭터들에게 딱히 정이 안 가는 상태에서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그들이나 이 영화나 선수들 개개인에게 서사를 부여해주고 마지막에 터뜨리는 구조는 동일하지만, 그 완성도에서 꽤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종목 자체가 다르기에 주요 인물 수부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을 배제하더라도 스프린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주요 인물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러닝타임 자체도 그리 길지 않은데도 짧은 시간동안 굉장히 효과적으로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보여준다.
스프린터는 군더더기 없는 장면들과 서사를, 안정적이고 침착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훌륭한 영화였고, 연출의 온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줄평: 담백함의 미학.
별점: ⭐⭐⭐⭐ (4.0 / 5.0)
'감상록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멘탈 (2023) / 두 갈래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 (0) | 2023.06.29 |
---|---|
플래시 (2023) / DC 유니버스의 도약 (0) | 2023.06.28 |
범죄 도시 3 / 익숙한 그 맛과 아쉬운 조미료 (2) | 2023.06.04 |
롱디 (2023) / 스크린 라이프와 로맨스 (0) | 2023.05.11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023) / 게임 원작 영화와 '팬 서비스' (0) | 2023.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