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전작을 잇는 스파이더버스 트릴로지의 두번째 작.
전작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정말 재미있게 봤었기 때문에 굉장히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작은 마일즈 모랄레스의 세계에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이 오게 되는 구조였다면, 이번 작은 여러 세계가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주인공이 그 세계들을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야기의 도입부 부터 그웬의 시점에서, 그웬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이 세계는 약간 유화풍(?)으로 그려진다. 처음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봤기 때문에 어? 그림체가 바뀌었나 싶었는데 르네상스의 벌쳐가 이 세계에 나타나면서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이 영화에서는 각 세계관만다 그림체가 달랐다. 이제와서 보면 사실 포스터만 봐도 그렇긴 한데 이건 어차피 무조건 볼 영화라 정말 강박적으로 정보를 습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몰랐던 것. 지금 생각해보면 1편의 느와르도 흑백으로 나왔기 때문에 사실 이미 예견되어 있던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이미 정점이라고 생각했던 1편의 비주얼을 2편은 다시 한 번 넘어서버린다. 진짜 비주얼 하나만 봐도 반드시 관람해야만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히어로물, 특히 트릴로지가 그러하듯 스파이더버스 시리즈도 첫 작이 히어로의 탄생을 그린다면 2부격의 작품에서는 히어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고뇌를 그린다. 전작에서 훌륜한 한 명의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한 마일즈 모랄레스도 이번 작에서 큰 혼란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 주어진 상황이 정말 너무나도 가혹하다.
전작을 볼 때도 어? 이 세계는 스파이더맨이 그럼 두 명인거야?하고 좀 의아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나는 원작도 전혀 모르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납득하고 넘어갔었는데 사실 알고 보니 이미 그 시점에서 이 세계관에는 엄청난 문제가 생겨난 거였다. 전작에서 마일즈를 물었던 거미는 사실 킹핀의 잦은 차원이동기 실험으로 인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녀석이었고, 그 녀석이 마일즈를 물어버리면서 마일즈의 세계에는 스파이더맨이 두 명이되고, 원래 그 거미의 고향 세계에는 스파이더맨이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마일즈 세계의 피터 파커도 원래대로 흘러갔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고.
이번 작을 관통하는 개념이 바로 "공식 설정"인데, 이건 우리가 만화를 보면서 흔히 말하는 개념을 실제 극중 설정으로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이라 굉장히 새롭고 재밌었다. 모든 세계선의 스파이더맨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공식 설정'들이 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각성하는 것, 그리고 친밀한 서장이 죽는 것 등등. (마일스는 이 사실을 알기 전에도 스파이더 인디아의 세계에서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서장을 살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공식 설정이 무너지면 세계에 이상이 생기고 무너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최근 여러 세계선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들의 출발점이 바로 마일스였던 것.
심지어는 이번 작, 그리고 다음 작까지의 메인 빌런인 스팟 또한 어찌 보면 마일스 때문에 생겨나고 마일스에 대한 복수심으로 결국 초월적인 존재에 달한 것이다. 마일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가혹하기 짝이 없는 진실이었다. 자신이 만악의 근원이고, 아버지가 죽을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두어야만 하고, 미겔을 필두로 하여 모두들 나는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마일스는 실제로 굉장히 동요하지만,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정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어찌보면 동시기 개봉한 플래시와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이렇게 '멀티버스'와 '히어로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두가지 지점을 정말 기가막히게 잘 연결지어 풀어낸다. 사실 요즘들어 멀티버스는 정말 질릴 정도로 많이 나왔고 (당장 올해만 봐도..) 이제 어지간해서는 관객들을 놀라게하기 힘들 상황인데 이 영화는 멀티버스를 굉장히 잘 이용한다. 솔직히 말해서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가는 장면부터 엔딩까지는 진짜 내내 넋이 나가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영화 초중반에서 나온 가족 시퀀스들과 스팟이 일개 잡범에서 전체 트릴로지의 메인 빌런으로 변해가는 장면들도 지나고보면 정말 탄탄히 잘 쌓아둔 느낌이라 감탄스러웠다. 어떻게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지.
물론 이런 식의 엔딩은 정말 가혹하지만.. 비주얼적으로도 스토리적으로도 진짜 어느 경지에 오른 작품이었다. 3부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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