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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게임 2가 오늘부로 막을 내렸다. 연일 화제성 순위에서 탑을 찍으며 매니악한 장르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특히 4회까지 나왔을 시점에서는 아 이건 진짜 역대급 프로그램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 블로그에 실컷 주접 떨었던 기억도 있다. 실제로 그 시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그냥 서바이벌계의 새로운 GOAT 느낌이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 결승까지 다 본 시점에서는.. 약간 애매한 감정이다. 
 
지금 생각해도 되게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은 여전하고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면서 즐거웠지만, 가면 갈수록 초반의 아성을 제 스스로 깎아 먹기도 했다. 좀 재미있는 건 내가 더 타임호텔 종영하고 썼던 리뷰에서 언급했던 아쉬운 점들이 결국은 피겜 2에서도 다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거다. 게임 재활용, 과도한 상금 깎아먹기 등등.. 그 글 쓰던 당시에는 피겜은 이럴 줄 몰랐지.. 그렇다고 비슷한 수준의 프로그램이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좀 웃겼다.
 
01. 거의 완벽한 오프닝
첫 회를 틀었을 때, 나는 이 오프닝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감탄했다. 편집에 군더더기 없는거야 말할 것도 없는 거고 매니악한 장르를, 그것도 OTT 단독 공개로 풀어나갈 때 취할 수 있는 아주 모범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첫회는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진짜 '그냥 시작해버린다'. 어떻게 보면 되게 불친절해 보이기도 한다. 여느 프로그램 같으면 길고 긴 서두와 함께 출연진 개개인에 대한 인터뷰와 약력들로 10분은 족히 써먹을 텐데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묶여 있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게임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참가자들처럼 시청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TV 방영이라면 사실 이렇게 담기 힘들겠지. TV 방영을 하는 순간 그 프로그램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최소한의 친절함은 지켜줘야 한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응당 그래야지.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OTT 단독 공개에, 전작도 있고, 장르 자체도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 팬들이 유입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이들에게 어디서 본듯한 인트로는 지겨울 뿐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그냥 들이 받아버린다. 누가 볼지를 정확히 아는 거다. OTT의 약점이자 강점인 '확증 편향'과 '파편화'를 굉장히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우리는 프로그램을 틀자마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몰입감이 전부인 장르 아닌가. 사실 첫 회? 내용적으로는 별 거 없다. 굉장히 흔한 문제 하나 푸는 게 메인 게임이고, 대부분은 데스매치와 투표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상황속에서도 제작진은 이 캐릭터들에 대해 충분히 잘 보여준다. 우리가 여느 프로그램에서 보던 서울에서, 깔끔한 옷 차려 입고, 참가자들의 개인 약력과 게임에 임하는 자세들을 인터뷰를 통해 들려주는 평범한 오프닝 시퀀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들려주는 건 쉽다. 보여주는 건 어렵다. 그러나 몰입감을 가져가려면 그냥 말해주기보다는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첫 회는 두고두고 생각날 만한, 굉장히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02. '피겜스러움': 정보 차단 / 드라마 
피의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숨겨진 무언가'다. 전작은 지하실 이번 작은 야생팀의 존재. 그러나 사실은 이것 말고도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 참가자들이나 정보에서 차단되어 있다. 판도라의 열쇠가 어디에 쓰이는 건지도, 그 상자가 어디에 있는 지도, 열쇠를 안 쓴채 하루가 지나면 어떻게 되는 지도, 도대체 습격의 날은 언제인지도, 감옥 시스템은 언제 끝나는 거고 도대체 이 감옥 플레이어는 어떻게 다시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지도, 추방된 사람은 뭐가 어떻게 되는 지도... 등등등 진짜 굉장히 많은 지점들이 베일에 싸여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편한대로 공개된다. 사실 추리 소설로 예를 들자면 독자들과 불공정한 게임을 하는 거라며 지탄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뭐 실제로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감옥 룰북 어디에도 지상에 다시 올라가는 법에 대해 안 적혀있다는 사실이나, 그 감옥 시스템이 그냥 별도의 언질없이 어느새부턴가 사라졌다는 사실등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피의 게임은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슬로건처럼, 어떻게보면 시청자와도 불공정한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다. 뭐 이렇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피의 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개성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서바이벌에 몰입해서 보다보면 자연히 어떤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워낙 몰입도를 중요시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서사'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장르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애초에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이 정보의 차단은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된다. 
 
03. 우승자와 서사. 그리고 시청자 
그리고 이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시청자마다의 주인공을 설정하게 만든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서사가 굉장히 중요하다지만 결국 이건 대본이 아니라 리얼리티고, 자연히 대다수가 응원하게 된 참가자가 맥빠지게 퇴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끝까지 주인공으로 남아서 최고의 엔딩을 만든다면 모두에게 좋겠지. (물론 충분한 위기는 보여준 채로) 근데 세상 일이 어떻게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겠는가. 문제는 시청자들이 자신이 기대하던 엔딩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엔딩을 필요 이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최종회가 올라오고,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반응들을 좀 봤는데 이번 결승전을 좀 필요 이상으로 폄하한다거나, 최악의 우승자라거나 등등의 반응들이 꽤 있었다. 물론 나도 결승전 되게 아쉬웠긴 했다. 게임도 재탕에, 좀 허탈한 실수도 있었고. 근데 이진형은 어쨌든 세미파이널도 파이널도 다 잘했거든. 그럼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번 결승의 결과를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중 대부분이 프로그램을 보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혹은 의식적으로 구야생팀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이 드라마를 봤기 때문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과다하게 폄하당하는 느낌이라 좀 그렇긴 했다.
 
물론 이게 그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냥 좀 아쉬울 뿐이지.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PD의 잘못이다. 이게 생방송도 아니고, 완전히 사전 촬영해서 찍어온 방송 아닌가. 첫 회 편집 들어갈 때부터 우승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럼에도 충분히 이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주지 못한 건 사실 PD의 패착이지. 물론 야생팀이 좀 더 돈독하기도 했고, 게임도 잘 풀어나간 경우가 많아서 보편적으로 호감일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근데 그렇다고 이진형이 서사적으로 약하진 않았거든 절대. 처음부터 '수능 만점자' 타이틀로 많은 지지와 견제를 동시에 받았고, 자연스래 팀의 두뇌 롤을 맡아서 팀전 당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전략을 냈다. 그러던 중 142만이라는 결정적인, 본인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최악의 실수를 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뭔가를 더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다른 팀원을 정치로 몰아 넣기도 하고. 결국 그 때 데스매치는 넘겼지만 이로 인해서 팀 내에서도 표적이 되기도 하고, 추방도 한 번 되고. 그럼에도 언제나 가장 적극적인 롤을 맡았고 막판에는 연속적으로 데스매치에 진출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정치력때문에 메인 매치에서는 좀 아쉬운 모습들을 보인 건 사실이지만, 사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언제나 우승 후보였고 충분히 좋은 서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당위성을 부여하지 못한 건 그냥 제작진 잘못이지. 우리도 똥밟은 거라고 해봐야 누가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 
 
+) 이건 그냥 생각나서 이야기 하는 건데 '더 지니어스 시즌 2'의 논란이 거셌던 것, 그리고 제작진들은 막상 촬영 당시에 신분증 사태에 대해 딱히 개입할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주인공' 문제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즌 2 초반에 홍진호가 굉장히 좋은 장면들을 많이 뽑아주긴 했지만, 전작의 우승자이자 명실상부 주인공인 상황에서 거의 곧바로 다음 시즌에 참가해버리니 대다수의 시청자가 애초부터 '홍진호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보는 현상이 당시에 굉장히 심했고, 그러다보니 논란이 더 거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경우도 그런 걸 예상 못한 게 가장 큰 잘못이긴 하겠지만. 정종연 PD가 가능한 서바이벌에 기출연자를 참여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물론 모를 일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04. 아쉬운 것들
사실 아쉬운 것들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더 타임호텔과 상당히 많이 겹친다. 게임 재탕도 너무 많고, 상금 조절도 명백하게 실패했다. 사실 기존 프로그램에서 결승전에 기존 게임을 넣는 이유는 시스템 게임이 진행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 (더 지니어스, 더 타임 호텔 등)이나 애초에 연습을 주안점으로 두었다거나 (소사이어티 게임) 하는 나름의 이유 정도는 댈 수 있는데 이번 피의 게임은 글쎄? 아니 하다못해 정글 메이즈와 히든 미션의 위치라도 바뀌었다면 구조상 이해라도 됐을 텐데 왜 새 게임이 세미 파이널에, 그것도 한 쪽에만 있고 진짜 결승에는 정글 메이즈가 나온건지.. 다행스럽게도 결승의 2명이 잘 플레이 해줘서 기존에 언급되지 않았던 전략들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지치는 게 사실이다. 상금도 (파이널 우승 상금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개인 상금에 한정한다면 처참했고. 숫자 경매만 봐도 어차피 11 타일은 다 살 수 밖에 없는 아이템이고, 실제로 한명도 빠짐없이 다 샀는데 이걸 굳이 따로 아이템으로 팔았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그 외에도 회차 구성에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긴 했다. 9-10회를 억지로 찢어놓고 이번 주에 13회만 공개한 것이라거나.. 아니 사실 회차마다 분량이 가지가지니까 오늘 것도 찢으려면 충분히 찢을 수 있었는데 왜 굳이 한 회에 몰아 넣었는지, 9-10회는 왜 갑자기 찢어 놓은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13회차를 만들고 싶었던 건지.. 사실 이건 딱히 아쉽다기 보다는 좀 의아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업계의 사정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
 


초반에 너무 재밌게 봤기에 아쉽긴 했지만, 진짜 재밌게 봤다.
덕분에 행복했던 7주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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